가류 산장 정원 OZU garyusanso

가류 산장 정원

가류 산장 정원 개요

가류(臥龍) 산장 정원은 수려한 조망을 살려, 히지카와강 기슭의 벼랑 지형을 이용해 조성한 ‘조망의 정원’입니다. 눈앞의 히지카와강을 비롯해 도미스산, 가메산, 야나세산 등 주변의 웅대한 자연을 시야에 담아, 부지가 기다랗고 좁은 편인데도 스케일이 크게 느껴지는 정원입니다.
또한, 외부에서 보았을 때 경관이 수려한 점도 큰 특징으로, 가류 산장 일대의 자연경관은 에도 시대(17~19세기) 때부터 경승지로 알려져 많은 이들이 찾았습니다. 절묘하게 배치된 가류 산장의 건축물과 정원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지금도 오즈를 대표하는 경관으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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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류 산장의 매력적인 계절 변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가류 산장 정원 안내도

호라이산

에도 시대의 호라이산

히지카와강 안에 있는 이 작은 섬은 에도 시대에는 ‘가류산’이라 불렸는데, 언젠가부터 ‘호라이산’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에도 시대의 호라이산은 산꼭대기에 사당이 있었고, 동쪽 후미에는 배를 댈 수 있어 선착장이나 하역장으로 이용되는 등 누구든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1899년, 도라지로가 이 토지를 취득한 후 호라이산은 가류 산장의 일부로 정비되어 등운교(藤雲橋: 도운쿄)라고 불리는 다리가 놓이고 다실 등도 지어졌습니다. 호라이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남아있는 돌담도 당시에 정비한 문의 잔존물로 여겨집니다.

호라이산 공중보기

  • 등운교

    등운교의 기둥

    등운교의 기둥(산장 측)

    산장 안과 호라이산에는 의보주가 붙어있는 굵은 돌기둥이 두 개씩 있고 ‘등운교’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이 중 하나에는 ‘메이지 32년 6월 가교’라고 새겨져 있어 가류 산장을 조성하면서 놓은 다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의 신문 기사에는 “등나무의 녹색 다리가 놓여 있다”는 표현이 있어 등나무 덩굴이 엉켜있는 다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등운교 주변에는 등나무가 서식하고 있어 당시의 흔적으로 여겨집니다.

  • 여락정(与楽亭)

    오즈 12 경치 그림

    병풍 그림에 묘사된 등운교와 여락정
    ‘오즈 12 경치 그림’ (시립 박물관 소장)

    호라이산 정상 부근에는 과거에 동그란 창이 달린 건물이 있었음을 1916년의 병풍 그림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병풍 그림에는 ‘여락정 전명’이라는 이름이 적혀있고 ‘전명(煎茗)’이 차를 달인다는 뜻이므로, 그 건물은 ‘여락정’이라는 다실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산장 내의 정원

산장 내의 정원

정원은 고베의 정원사 우에토쿠(植徳)를 초빙해 조성했다고 하며, 정원석으로는 이 지역의 휘록암과 녹색편암을 중심으로 특이한 기둥 모양의 겐다석(이요시 후타미초 미나다 산(産)) 등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또한, 오사카의 요도야 다쓰고로(淀屋辰五郎)의 정원에 있었다고 하는 데마리 돌 등 엄선한 석재를 정원의 요소요소에 절묘하게 배치했습니다. 정원 나무로는 백일홍, 넓은잎삼나무 등 당시에 유행했던 수목을 모은 한편, 돌담 안에는 서식하던 수목을 그대로 남기는 등 자연과의 공생을 추구했습니다.

도라지로는 정원 조성에 관해서도 고베로부터 꼼꼼히 지시를 보내는 등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큰 애착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도라지로의 미의식과 독창성이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산장 내의 정원

  • 후로안 아래의 명문

    후로안 아래의 명문

    후로안 아래의 돌담 중에는 눈에 띄게끔 비스듬하게 배치한 기다란 돌(244cm×30cm)이 있습니다. 그 돌에는 메이지 32년(1899)이라는 연호와 함께 험준한 벼랑에 돌담을 쌓은 야마모토 도쿠조(山本徳蔵)라는 인물을 칭송하는 내용의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해는 도라지로가 토지를 취득한 해이기도 하여 취득 후 바로 이 돌담이 시공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01년에 후로안이 준공한 점을 미루어보아도, 가류 산장을 조성하면서 후로안 건설을 우선했음이 엿보입니다.

  • 선착장 터

    선착장 터 돌계단

    가류 심연에 인접한 강변에는 암반을 깎아 평평한 곳이나 돌층계로 가공한 부분이 있습니다. 당시의 선착장 터로 여겨지며, 배를 타고 와 바로 산장 안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위로는, 돌계단을 올라가 등운교나 지시안으로 향하는 작은 길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배로도 산장으로 손님을 맞이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가류 산장과 고우치 도라지로

오즈 출신 무역상 고우치 도라지로가 메이지 시대 후기에 조성

고우치 도라지로

가류 산장이 자리하는 히지카와강 일대는 에도 시대부터 널리 알려진 명소로, 히지카와강에 인접한 호라이산의 모습이 용이 엎드린 모습과 닮아서 ‘가류(臥龍)’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메이지 시대 후기, 이 히지카와강에 접한 경승지에 조성된 것이 가류 산장입니다.

시공주는 오즈시 니야 출신 무역상 고우치 도라지로(河内寅次郎: 1853~1909)로, 고베를 거점으로 목랍을 수출하여 부를 쌓은 인물입니다. 고향인 오즈에 별장을 짓기 위해 1899년에 이 땅을 구매했고, 약 10년에 걸쳐 건물과 정원을 정비했습니다. 산장 안에 있는 건물, 가류인(臥龍院), 후로안(不老庵), 분코(文庫)의 3개 동이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가류 산장을 조성할 때 교토의 뛰어난 장인과 고베의 정원사를 불러왔고, 이 지역의 목수 두령이던 나카노 도라오(中野寅雄)가 이들을 통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베에 있던 도라지로도 재료 확인부터 장식의 세부 사항까지 꼼꼼히 지시를 보낸 것으로 보아, 도라지로 본인이 조성에 매우 큰 애착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류 산장이 완성되고 얼마 되지 않은 1909년, 도라지로는 고베에서 큰 병에 걸려 만 56세의 이른 나이에 생애를 마감합니다. 도라지로의 묘는 가류 산장의 강 건너에 정면이 산장을 향하도록 만들어져, 지금도 산장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메이지 32년(1899) 가류 산장, 호라이산의 토지를 취득
후로안 아래의 돌담 시공
메이지 33년 (1900) 후로안 착공
메이지 34년 (1901) 후로안 준공
메이지 36년 (1903) 가류 산장의 토지를 추가 취득
메이지 37년 (1904) 가류인 착공
분코 상량
메이지 38년 (1905) 가류인 상량
메이지 39년 (1906) 지시안(욕실 변소) 준공
메이지 42년 (1909) 고우치 도라지로 서거 (향년 만 56세)

오즈 시내에서 가류 산장 오시는 길

오즈 시내에서 가류 산장 오시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