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류 산장이 자리하는 히지카와강 일대는 에도 시대부터 널리 알려진 명소로, 히지카와강에 인접한 호라이산의 모습이 용이 엎드린 모습과 닮아서 ‘가류(臥龍)’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메이지 시대 후기, 이 히지카와강에 접한 경승지에 조성된 것이 가류 산장입니다.
시공주는 오즈시 니야 출신 무역상 고우치 도라지로(河内寅次郎: 1853~1909)로, 고베를 거점으로 목랍을 수출하여 부를 쌓은 인물입니다. 고향인 오즈에 별장을 짓기 위해 1899년에 이 땅을 구매했고, 약 10년에 걸쳐 건물과 정원을 정비했습니다. 산장 안에 있는 건물, 가류인(臥龍院), 후로안(不老庵), 분코(文庫)의 3개 동이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가류 산장을 조성할 때 교토의 뛰어난 장인과 고베의 정원사를 불러왔고, 이 지역의 목수 두령이던 나카노 도라오(中野寅雄)가 이들을 통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베에 있던 도라지로도 재료 확인부터 장식의 세부 사항까지 꼼꼼히 지시를 보낸 것으로 보아, 도라지로 본인이 조성에 매우 큰 애착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류 산장이 완성되고 얼마 되지 않은 1909년, 도라지로는 고베에서 큰 병에 걸려 만 56세의 이른 나이에 생애를 마감합니다. 도라지로의 묘는 가류 산장의 강 건너에 정면이 산장을 향하도록 만들어져, 지금도 산장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 메이지 32년(1899) |
가류 산장, 호라이산의 토지를 취득 |
| 후로안 아래의 돌담 시공 |
| 메이지 33년 (1900) |
후로안 착공 |
| 메이지 34년 (1901) |
후로안 준공 |
| 메이지 36년 (1903) |
가류 산장의 토지를 추가 취득 |
| 메이지 37년 (1904) |
가류인 착공 |
| 분코 상량 |
| 메이지 38년 (1905) |
가류인 상량 |
| 메이지 39년 (1906) |
지시안(욕실 변소) 준공 |
| 메이지 42년 (1909) |
고우치 도라지로 서거 (향년 만 56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