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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즈시에 관해서

    역사,문화

    원시, 고대

    멘히르(선사시대 거석)
    오즈지방에는 기원전 1만년경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조몬, 야오이시대에는 논,밭 유적등 많은 유적 유물이 발견되고 게다가 다양한 모양에 걸쳐 여러시대에 이르고 있습니다. 또 이시기 식량사정의 안정을 위해 거석을 숭배, 동양제일이라 불리우는 고산 멘히르로 시작, 시내 여러군데에 거석, 거석무리등이 측적되었습니다.

    다이카노카이싱(다이카원년 중앙집권화등 국정개정)에의해 마련된 지방제도에 의하면 오즈는 이요국 우와군에 속해, 866년에는 독립해 키타군이 되었습니다. 키타군은 야노쿄, 쿠메쿄, 니이야쿄 3개의 쿄로 나눠져 있습니다. (倭名類聚抄와묘루이쥬쇼)의하면

    켕베이 전쟁에서 키타군도 그 전란에 빠져들어 1185년, 河野通信(미노부치)가 히지성에 머물며 헤이시 공격을 물리쳤다(予章記 요쇼우)에 의하면

    중세

    오즈성
    카마쿠라시대에 들어서 오즈지방을 통치한 이요국수호우츠노미야토요후사. 1330년 착임해서 240년 가깝게 지배했습니다.
    토요후사는 大津地蔵嶽 (지죠우가다케)에게 성을 쌓게 했다고 합니다. 그후 난세를 반영해 오노나오유키, 코바야카와타카카게,토다카츠타카가 계속해서 성주가 되었습니다

    근세

    카토사다야스
    토다카츠타가 관해서는 1595년 토요토미히데요시의 중거,토도타카토라가, 이타지마(우와지마)에서 오츠(현오즈)에 들어가, 1609년 아와지코쿠스모토 성에서 입성한 와카자카 야스하루에 물려주었다

    오즈성을 근세 성으로 개조한 것은 토도시에서 와키사카시 시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여진다.
    거리구획등 마을등의 기초는 토도시가, 현재 복원되어 있는 오즈성 천수의 조영은 와키사카시가 했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와키사키시의 후를 이어 1617년에 加藤貞泰(사다야스)가 ,요나고에서 오츠에 이전했습니다. 이후 메이지 유신까지 12대 250년 남짓 걸쳐서 오즈는 카토시에 의해 다스려졌습니다.

    일본 양명학의 선조라 불리우는 유학자 오우미성인(聖人) 나카에토우쥬 선생도 10살 때 카토사다야스 와 함께 오즈로 옮겨 27살때까지 오즈에서 생활, 면학에 몰두 제자들에게 (대학)을 가르쳤습니다. (인의도)를 설명한 토우쥬선생의 가르침은 지금도 오즈주민들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근대

    오즈 아카렌가캉(빨간벽돌로만들어진 건물)
    메이지의 선각자로써 국학자 야노하루미치, 메이지헌법 제정에 힘쓴 코우도 스스무, 시보르토에 근무한 의학자 미세모로부치,하코다테교료카쿠를 설계한 타케타시게아야 등 많은 위인을 배출했습니다.

    일찍이 손으로 만든 일본 전통종이 와시, 목랍, 제사업이 흥행, 현재에도 와시는 오즈와시. 명주실은 양질의 이요명주실로 알려져있습니다.

    또 예부터 히지가와(강) 덕분으로 비옥한토양을 이용한 농업을 중심으로 발전한 오즈시지만 최근 제3차 산업에 종사자가 50%를 넘는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