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지정 중요문화재 나가하마 대교 OZU NAGAHAMA OHASHI BRIDGE

개폐교의 탄생

나가하마 대교 건설 전 나가하마 대교 건설 전

나가하마는 한세이(영주 통치) 시대부터 하천의 수운과 해운을 연결하는 중요한 거점으로 발전한 항구 도시입니다. 히지카와 강 하구 부근은 짐을 내리고 싣는 많은 배들이 왕래하였습니다.
배를 잇대어 만든 부교를 임시로 놓는 경우도 있었지만, 히지카와 강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 기슭의 나가하마초와 왼쪽 기슭의 쿠슈무라 오키우라를 잇는 유일한 교통 수단이 평상시에는 나룻배였기 때문에 양 기슭을 잇는 다리가 생기는 것은 지역 주민의 오랜 바램이었습니다.
나가하마 대교는 현 도로 나가하마・카와노이시(야와타하마 시) 선과 나가하마・군추(이요 시) 선의 연결과 경기 활성화를 위한 공공사업으로 건설되었습니다.

다리의 설계는 선구적인 교량 컨설턴트로 꼽히는 마스다 준 씨가 맡았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배운 고도의 기술을 구사해 기존의 형식과 다른 가동교를 많이 설계하였습니다. 다리의 상류에 위치한 목재 집적지(에고)에 드나드는 배의 통행, 지질, 비용 등을 감안하여, 교량 거더(bridge girder, 교각 위의 판을 지탱하는 도리)의 한쪽이 개폐되는 가동교 구조를 도입하여 건설하였습니다. 건설비 약 28만엔(현재의 가격으로 환산하면 약 20억엔)을 투자한 가설 공사는 잠함(케이슨) 공법이라 불리는 기초 공사와 조위의 고저 차를 이용한 부선식(플로우팅) 가설법 등 당시의 첨단 기술을 모아 1935년 8월에 완성했습니다.

  • 공사 중에 놓은 부교

    공사 중에 놓은 부교 사진제공: 호소노 후사오 씨
  • 거룻배로 교량 거더를 이송

    거룻배로 교량 거더를 이송 사진제공: 호소노 후사오 씨
  • 개통식의 다리 건너기 행사

    개통식의 다리 건너기 행사

나가하마 대교 가교의 주역   니시무라 효타로

나가하마 대교 가교의 주역 니시무라 효타로

니시무라 효타로(1884~1935)는 30세부터 51세(사망)까지 5기(21년 5개월)에 걸쳐 나가하마초의 수장을 역임하였고, 재직 중 현 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어, 17년 동안 에히메 현정에도 참여하였습니다.
나가하마 대교는 사업화되기까지 정치적인 분쟁에 휩싸이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완성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현의회 의장이었덨던 니시무라 씨가 크게 힘을 쏟았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외에도 니시무라 씨는 에히며 철도의 개통, 나가하마코 항의 개수 정비, 상수도의 신설, 수족관 건설 등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니시무라 전에 니시무라 없고, 니시무라 후에 니시무라 없다”고 일컬어질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사용 중인 유일한 도로 가동교

지금도 사용 중인 유일한 도로 가동교

일본에서 근대에 가설한 가동교 중 현재까지 가동 중인 다리는 3곳뿐입니다. 그 중 2곳은 철도교로, 나가하마 대교가 유일한 도로 가동교입니다.
나가하마 대교는 교량 거더의 한쪽이 개폐하는 단엽식 도개교입니다. 다리 위에 얹혀진 카운터웨이트라고 불리는 약 82톤의 무게추를 이용해, 약 54톤이나 되는 교량 거더를 부드럽게 개폐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완성 당시에 다리는 진한 회색으로 도색되어 있었으나 전후 붉게 도색된 이후 주민들 사이에서는 ‘붉은 다리’로 친근하게 불려왔습니다. 대형 선박이 통행하지 않게 된 현재는 주 1회 정기 점검을 겸해 개폐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구 개폐용 전동 기계 장치

구 개폐용 전동 기계 장치

2000년에 조작실을 개조하면서 모터를 포함한 가동 장치의 교환을 실시했습니다. 다리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장치는 현재 나가하마 후레아이 회관에 전시 ・보존되어 있습니다.

전쟁의 피해와 철거를 견뎌낸 생활도로교

전쟁의 피해와 철거를 견뎌낸 생활도로교

그러먼기가 퍼부은 기총 발사 자국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1935년에 완성된 나가하마 대교는 전쟁 피해도 받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미국 그러먼기의 공격을 받아 다리의 개폐가 일시적으로 불가능해지기도 했습니다. 곳곳에 남아있는 기총 소사의 흔적들이 총격의 참혹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1977년에는 교통량의 증가와 권역 교통체계 정비를 위해 나가하마 대교 하류에 총길이 333m의 신 나가하마 대교가 건설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나가하마 대교는 철거될 위기에 처했으나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구 나가하마초가 현과 교섭하여 생활도로교로 남게 되었습니다.

일본 3대 목재 집적지, 나가하마

목재 집적지 목재 집적지

나가하마는 와카야마 현 신구, 아키타 현 노시로와 함께 일본 3대 목재 집적지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히지카와 강 상류의 사카이시 등에서 뗏목을 흘려보내는 방법으로 에고에 모은 목재를 줄줄이 목재시장으로 출하하였습니다.
1910년대부터 서일본 목재업계의 중요한 위치를 점했던 나가하마에는 카가와, 히로시마, 오이타 등 서일본 각지에서 목재업자가 경매를 위해 모여들었고, 나가하마 시장의 가격이 서일본 가격 수준을 정했다고 합니다. 쇼와 초기(1920~30년대)에는 취급량의 반이 상사를 통해 대만, 만주, 한반도 등으로 수출되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이요의 작은 통나무’로 불리며 건축재나 탄광의 버팀목으로 키타큐슈나 우베로 보내졌습니다.
전후에는 복구를 위해 목재 수요가 크게 늘어 호황을 누렸으나 점점 저렴한 외국산 목재가 수입되면서 1960년대 후반 무렵에는 취급량이 전성기의 반 이하로 감소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형 트럭의 보급으로 강 주변에 입지할 필요가 없어진 목재 공장이 이전하면서 나가하마의 목재업은 쇠퇴하게 됩니다. 이렇게 목재 창고가 있던 에고도 대부분 철거되고, 현재는 나가하마 중학교의 운동장이 되었습니다.

  • 뗏목 흘려보내기 뗏목 흘려보내기
  • 배로 붐비는 히지카와 강 하구 배로 붐비는 히지카와 강 하구
  • 나가하마 대교의 옛모습 나가하마 대교의 옛모습
  • 일본 3대 목재 집적지, 나가하마

히지카와 아라시(폭풍)

히지카와 아라시(폭풍)

히지카와 아라시란...

‘히지카와 아라시’란 가을부터 겨울에 걸쳐 에히메 현 오즈 시 나가하마의 히지카와 강 하구 부근에 밤부터 아침 무렵까지 부는 안개를 동반한 차가운 강풍을 말합니다. 맑게 개인 날 아침 상류의 오즈 분지에서 발달한 냉기가 안개와 함께 히지카와 강을 따라 단숨에 흘러내려 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안개의 호수에서 강물이 흘러넘치는 듯 하며, 그 흐름은 으르렁 소리를 내며 세차게 내달려 이윽고 마을을 삼켜 버립니다. 안개의 강이 바다로 흘러가는 장대한 풍경을 보면 대자연의 신비에 넋을 잃게 됩니다.

히지카와 아라시 예보회 HP(일본어)

나가하마초의 주민들이 히지카와 아라시 예보 정보를 알리고 있습니다. 내일의 히지카와 아라시는 어떨지 꼭 참고로 해 주십시오.

肱川あらし予報会 検索 http://www.arashi-nagahama.com/

아라시는 왜 발생할까?

히지카와 강은 총 길이 103km, 유역 면적 1,210k㎡의 현 최대의 일급 하천입니다. 가을부터 겨울에 걸친 온화하고 맑게 개인 밤, 기온의 변화와 히지카와 특유의 지형으로 인해, 오즈 분지의 저온 고기압 지점에서 고온인 이요나다 쪽으로 부는 강한 육풍이 발생하고, 새벽의 냉기가 안개를 동반하며 ‘히지카와 아라시’가 생기는 것입니다.

아라시는 왜 발생할까?

【나가하마 대교로 오시는 길】

나가하마 대교로 오시는 길

나가하마 대교로 오시는 길

국가 지정 중요문화재 ‘나가하마 대교’ 개요

명칭 나가하마 대교
부 구 개폐용 전동 기계 장치 일식
원수 1기
지정 연월일 2014년 12월 10일
소재지 에히메 현 오즈 시 나가하마초 오키우라, 나가하마
소유 에히메 현 오즈 시
구조・형식 강제도개교
강제 판항 2기,
강제 워런 트러스 5기,
철근 콘크리트 조교각 6기,
철근 콘크리트 조교대 2기,
도개 장치 1식
규모 총길이 : 232.3m 너비 : 6.6m
건축년 기공 : 1933년 11월
준공 : 1935년 8월
공사 발주 에히메 현
공사 설계 마스다 준 (마스다 교량 사무소)
공사 감독 타케다 료이치
공사 시공 총 원청 : 합자회사 호소노구미
트러스 강재 제작 : 안도 철공소
가동부 강재・기계제작 : 오사카 철공소
전기부분 제작 : 메이덴샤
총 공사비 28만엔
비고 매주 일요일 13시에 개폐하고 있습니다